Beth Eunhee Hong

writer, teacher, human.


원본: The Rat

🔊 감상 추천 👆🏻

나는 리트릿에서 애니가 자기 처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그 깊은 평온함이 질투나서 쥐를 훔쳤다. 비참한 거지가 길가에 세워진 터무니없이 호화로운 차를 보고 흠집 하나라도 내보겠다고 돌을 던지듯, 나도 그녀의 고요함을 산산이 부수고 싶었다.

쥐의 이름은 샘이었다. 애니가 그 쥐를 어떤 대명사로 부르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서, 나는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걸 보고 임신한 암컷이라고 생각했다. 검색이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우리는 휴대폰을 압수당했고 바깥 세상과 연결되는 건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욕실에서 거울 속의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샘은 세면대에 앉아 소금 크래커를 조심스레 갉아먹고 있었다. 털 색은 내 머리카락과 꼭 닮은 짙은 갈색, 거의 검은색이었다. 하지만 내 머리와는 달리 샘의 털은 마치 어떤 특별한 컨디셔너를 바른 듯 윤기가 흘렀다.

나는 아마 3~4일은 샤워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고아원에서 나를 ‘홀리스틱 정신 건강 센터’에 강제로 집어넣은 것에 대한, 나 혼자만의 초라한 저항이었다. 나는 ‘중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진 위탁 청소년을 위한 대체 치료 전략’이라는 이름의 대학 연구 프로젝트의 실험 대상이었다.

우리 가족이 뉴저지의 이름도 없는 교외에서 약국을 연 지는 8년이 지나 있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엄마는 갓난아기였던 남동생을 품에 안고, 또래 아이들 진도에 맞추라며 억지로 쓰게 한 나의 영어 일기를 매일 꼼꼼히 확인해 주었다.

아빠는 서툰 영어와 좋지 않은 사회성에도 불구하고 약국을 간신히 버텨냈다. 손님 대부분은 아빠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었다. 병적으로 여윈 사람들, 혹은 뒤틀린 풍선처럼 부은 사람들—그런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

“이게 미국 생활이야.”

엄마는 가끔 그렇게 혼잣말하곤 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열네 살이었을 때, 나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남동생이 바로 눈앞에서 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뒷문으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몰래 손님이 떨어뜨리고 간 담배 한 개비를 피우려고 했던 순간이었다.

창문 너머로, 처방약 재발급을 요구하는 한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앰페타민에 취해 갈라진 목소리였다.

“씨—팔, 내가 처방전 달라 그랬잖아! 나 지금 존—나 아프다고!”

아빠의 목소리가 낮게 들렸다. 서투른 영어 발음이 꼬이면서 법적 절차와 전문 용어를 설명하려 애쓰고 있었다.

“아니, 아니, 아니. 여긴 내 빌어먹을 나라야. 감히 네가 뭘 결정해? 미친 짱—아리 새끼가.”

그때 엄마가 끼어들었다. 엄마의 목소리도 그 여자만큼이나 날카롭고 높아졌다. 여덟 살인 동생은 엄마 다리 뒤에 숨어 벌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총성이 울렸다.

하나.

둘.

셋.

넷.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몸도, 목소리도, 모든 것이 충격으로 굳어버렸다. 어느 순간 나는 둘로 쪼개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일부는 몸 밖으로 빠져나와 5미터쯤 위에서 모든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꼭 실험 인형을 조종하는 꼭두각시 주인처럼.

마지막 총성은 계산대에서 울렸다.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브라와 뒷주머니에 구겨 넣은 253달러를 가지고. 그날 오후, 경찰은 그녀를 집에서 체포했다. 그녀는 여덟 살짜리 아들과 함께 지하 스위트에 살고 있었다.

신문들은 그녀의 아들이 몇 살인지, 이제 플로리다에 사는 먼 친척들의 보호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 여자가 지역 요양원의 정규 간호사였고, 가벼운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친 뒤 “힘든 시기”를 겪어왔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하지만 정작 우리—피해자들—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가 한국에서 약학과 수석 졸업생이었다는 것도, 엄마가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였다는 것도, 여덟 살이던 내 동생이 앞으로 자라지도 못한다는 것도—그런 건 아무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미국이라는 끝 모를 거대한 ‘총격 사건 목록’ 속 한 항목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혼자 남았다.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사람들이 그 역겨운 눈빛으로 “그래도 감사해야지” 같은 말을 하는 걸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들은 내가 그 가짜 같은 웃음과 과장된 진심 연기를 죄다 꿰뚫어보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당한 일이 자기들에게 일어나지 않은 것에 안도할 뿐이다.

최악은 기독교인들이다. 이런 이야기에 완전히 환장한다 — 나처럼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비참하고 초라한 죄인 위에 도덕적 우월감을 쌓아 올릴 수 있으니까.
물론, 어쩌면 그게 그들이 붙잡고 있는 마지막 위안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제발 좀.

가끔은, 매일같이 억지로 삼켜야 하는 끝도 없는 향정신성 약물 칵테일 때문에 심한 조증 발작에서 겨우 내려오는 순간에는, 솔직히 그들의 단순한 세계관이 부럽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 ‘우리 대 그들’이라는 구도는 묘하게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어딘가에 속해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지만, 기독교인들이 모두 위선적인 개자식은 아니다.
많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나는 국가의 보호 아래 놓였다. 지역 한인 교회가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1년을 살았다. 그러다 리트릿 프로그램 서류에 사인했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였다.

갈 곳이 정말로 없었다. 이쯤 되자 ‘집’이라는 건 그저—내 존재라는 불확실한 짐을 떠안아 줄 공간과 인력이 남아 있는 어느 사회복지 기관이든, 그곳을 의미하게 되어버렸다.

일주일 전, 리트릿에 도착하고서야 내 안의 ‘분노’가 깨어났다.
나는 모두에게 내가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애니는 내가 오기 최소 1년 전부터 리트릿에 있었다. 나와 같은 고아였지만, 다른 주 출신—아마 캘리포니아. 금발머리에 청록색 눈동자를 가진 천사 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너무 연약해 보여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녀가 말을 하는 순간은 상담사나 직원, 그리고 그 쥐에게뿐이었다.

그 쥐가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그녀가 숲에서 발견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녀는 종종 휠체어를 탄 채 연못가에 앉아, 무릎 위에 샘을 올려놓고 있었다.
애니는 유전적 질환 때문에 한쪽 다리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고, 근육과 골밀도가 부족했다. 그리고 여섯 살 때부터 위탁 아버지에게 반복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왔다.

고통의 척도로 따지자면, 애니가 더 심했다. 우리는 둘 다 열여섯이었지만, 그녀는 이미 고통을 초월해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 비밀을 알고 싶었다. 광기에 가까울 만큼 집착했다.
어쩌면 쥐가 그녀의 힘의 원천이라고—삼손의 머리카락처럼—나는 미쳐서 그렇게까지 생각했다.

거울 속 내 부은 얼굴과 텅 빈 눈을 바라보았다. 임신했을지도 모르는 쥐를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나는 샘을 가장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훔쳤다.
방문객 라운지의 쓰레기통에서 주운 성냥 하나로 온실에 불을 질렀다. 계절 채소가 자라는 온실에.
모두가 혼란에 빠진 사이, 나는 애니의 방에 몰래 들어가, 양말을 폭신하게 깔아둔 신발 상자 속에서 고이 잠든 쥐를 납치했다.

수도꼭지 손잡이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며칠 후 샘을 돌려주면 좋을까?
그동안 애니를 괴롭게 만들까?
혹은 샘을 숲에 풀어줄까?
아니면, 샘을 여기서 익사시킨 후, 시체를 신발 상자에 넣어 애니의 방에 다시 둘까?

마지막 선택은 끔찍했지만, 그 생각에 숨이 잠시 멎는 듯했다.

머릿속에 질책이 울렸다. 고아원 김 신부의 담담한 중저음 목소리였다.
“하나님이 너에게는 멀쩡한 몸을 주셨다. 애니는 평생 휠체어에 갇혀 살아야 해. 부끄러운 줄 알아라. 쥐를 돌려줘라.”

나는 도덕적 함의를 곱씹으며 숨을 고르게 쉬었다.
“씨발, 김 신부…”
나는 중얼거렸다.

수도꼭지 손잡이를 다시 돌려보며, 쥐도 물고문이 가능한지 궁금해졌다.

나는 뭘 결정하지 못할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서랍에서 검은 스케치북과 연필을 꺼냈다.
임신한 쥐를 고문할 수는 없었지만, 대신 그림 속에서라면 할 수 있었다.
나는 도덕적 딜레마를 늘 이런 방식으로 해결했다.

샘은 크래커를 다 먹고 두 발로 서서 공기를 맡고 있었다.

나는 연필을 종이에 대고 스케치를 시작했다.

postscript

나는 이 젊은 여성 엘라(Ella)가 내 화자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그 ‘취약한 에너지’를 잘 담아내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물론, 그녀의 이야기를 꼭 들어보길 추천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가 걸어온 길 — 서로 다른 문화와 분열된 정체성 속을 헤쳐 나가는 여정 — 을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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