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Afterlife
세상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나는 내 스크랩북을 끝내야 했다. 내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남겨야 했다. 내 이름, 생년월일, 출생 도시 같은 기술적인 정보들. 희망과 꿈 같은 주관적인 정보들. 벙커 밖 세상처럼 쾌락적 혼돈에 빠지지 않고, 끝까지 버티어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것이 지난 여덟 달 동안 내 자궁에서 자라온 아기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소행성은 정확히 28일 뒤, 아기가 태어날 즈음에 지구를 강타할 예정이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아이의 성별을 알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여자아이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다. 아이가 존재할 세상이 없을 테니까. 아이의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에 떠났다. 한 십대 약탈자의 총알에 머리를 맞고 죽은 것이다.
나는 자원 민방위 군인으로서 인류 문명이 급속도로 붕괴하는 모습을 최전선에서 지켜봤다.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 사실상 행성을 완전히 불모지로 만들 거라는 소식은 우리 정부를 포함한 모든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그것은 내가 대학 3학년 여름이었다.
연인의 죽음을 그의 여동생이 올린 페이스북 글로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수도에 있던 근무지를 버렸다.
“친애하는 친구들과 가족 여러분, 저는 마이크의 여동생 로니입니다. 마이크는 어제 아침, 그레그 다브로시오라는 청년에게 머리에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그의 죽음에 슬픔과 절망에 잠겨 있습니다. 마이크가 얼마나 친절하고 관대하며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는지, 아는 이라면 누구나 알 것입니다.”
그 글은 이어서 마이크가 전직 전국 레슬링 챔피언이자 코치로서 이룬 성취들을 세세히 묘사했다. 사실 그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나의 코치였다. 내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우리는 처음 관계를 맺었다. 내 첫 전국 레슬링 대회에서 2등을 했던 날 밤이었다.
졸업할 때까지 우리 관계를 비밀로 하기로 약속했다. 그전까지는 고속도로를 따라 옆 도시까지 긴 드라이브를 갔고, 그는 나를 딸로 가장시켜 고급 호텔방을 주말마다 빌렸다. 우리의 다부진 체격과 날카로운 눈빛 덕분에, 위협이나 낯익은 얼굴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모습 덕분에, 우린 어쩌면 정말 가족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그의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관계와 함께하는 삶을 아내에게 어떻게 고백할 것인지. 그러다 어느 날, 졸업을 며칠 앞두고 마이크는 나를 고급 레스토랑에 데려가 “아내와의 일은 모두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의 질문에는 대답을 거부했고, 대신 내가 대학 전국 대회에 나갈 가능성만 이야기했다. 다음 날 나는 그녀가 공원 참나무에 목을 매달린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다.
나는 그러면 안 됐지만, 그래도 마이크를 붙잡았다. 그는 내가 느끼는 삶의 진부한 반복에 대한 깊은 피로를 정말로 이해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내가 진정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상대를 바닥에 내던지고 누를 때뿐이었다. 마치 선사시대 인간들이 그랬듯, 그때는 스크린이나 필터 같은 것으로 왜곡되거나 보호받지 못했다. 그때 우리가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본능뿐이었다. 단순하고 순수한.
스케랩북은 150쪽, 앞뒤로 채우면 300쪽까지였다. 유년기에서 고등학교까지는 의외로 적은 분량을 차지했는데, 앞뒤로 합쳐서 고작 30쪽 정도였다. 나는 거의 모든 면에서 평균적인 아이였고, 단 하나의 예외는 월드 레슬링 연맹에 대한 집착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무대 위의 연출된 쇼에 빠져들었다. 몸들이 부딪히는 원시적 춤사위, 터져나오는 환호, 드라마틱한 장면들. 그래서 이 부분의 스크랩북에는 가족사진보다 좋아하는 레슬러들의 인쇄물이 훨씬 많았다. 어머니와 내가 손을 어색하게 잡고 차이나 뷔페 앞에 서 있는 사진이 하나 있긴 했다. 아버지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그림자가 보도블록 위에 찍혀 있다. 아버지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사진이었다. 어머니는 다른 사진들을 모두 찢어버리거나 버려버렸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엉성하게 여자로 성장해갔다. 작고 하트 모양 얼굴은 넓고 근육질의 어깨와 팔과 어울리지 않았다. 내 사진 대부분은 레슬링 연습이나 대회에서 찍은 것이었다. 나는 동·은·금메달을 자랑스럽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마이크는 몽골 전사의 체격과 얼굴을 지녔는데, 전통 의상을 입었더라면 그 무리에 완벽히 어울렸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혈연처럼 보였다.
나는 아이가 누구를 닮을지 생각했다– 나일지 마이크일지. 하지만 세상이 불타오르는 지금은 공허한 생각일 뿐이었다. 우선은 스크랩북을 완성해야 했다. 모든 것을 연대기와 주제별로 정리해야 했다. 이 지하 벙커 깊숙이 묻힌 이 책을 언젠가 새로운 생명체들이 찾아내어 나와 태어나지 못한 내 딸의 삶을 기릴지도 모르니까.

추신
〈A House of Dynamite〉을 보며, 진짜 ‘세상의 끝’이란 어떤 감각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거대한 장면이 아니라, 그 아래에서 조용히 풀려나가는 것들. 이상하게도 그걸 보고 나니, 미완성인 이 단편을 결국 세상에 내놓을 용기가 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