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The Story of My Life, at 26
머리말
요즘에야 비로소 지난 20여 년에 걸친 오래된 일기들을 다시 펼쳐볼 시간(그리고 그럴 용기)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주하게 된 것은, 놀랍게도 2014년, 스물여섯 살의 제가 남긴, 수정도 검열도 거치지 않은 자서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의 한 시골 지역에서 1년째 거주하며 공립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고, 실존적 불안 속에 깊이 잠겨 있었습니다. 이 글은 스스로에게 사라지지 말아야 할 이유를 상기시키기 위해 쓴 것이었습니다.
주석과 사진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아래의 글은 스물여섯 살의 제가 스스로에게 들려준 삶의 이야기를 아무런 수정 없이 옮긴 기록입니다.
나는 1988년 7월 31일에 태어났다. 그해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여름이었다. 나는 비교적 붉은 피부로 태어났으며, 어머니께서는 나를 일본어로 ‘붉은 아기’를 뜻하는 “아카짱”이라 부르셨다.1
나는 서울 노원구의 한 교외 지역에서 성장했다. 대리석 식탁과 흰 바닥, 잘 갖춰진 가구가 놓인 단정한 아파트에서 생활했다.

내가 아직 태어나기 전, 할아버지2께서는 폐암으로 별세하셨다.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유산으로 가족은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파리, 로마, 스코틀랜드, 영국 등을 방문했다. 그중에서도 파리는 지금까지도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여섯 살 때 영국으로 이주했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시기였으며, 새로운 언어를 빠르게 익혀야 했다. 그 무렵 어머니께서는 우리를 자주 도서관에 데려가셨다. 나는 방과 후 대부분의 시간을 책과 함께 보냈다.
책은 또 다른 세계를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고, 세상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넓혀 주었다.3 특히 사람과 그 내면에 대한 호기심이 컸으며,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지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이러한 관심은 이후 저널리즘에 이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고자 하는 바람을 품게 되었다.4
고등학교 1학년 무렵, 아버지는 한국을5 떠나셨다. 당시 나는 감정을 충분히 인식하거나 표현하기 어려운 상태였으며, 스스로를 설득하듯 감정을 정리하려 했다.

어머니와의 관계에는 정서적 긴장과 갈등이 있었다. 때로는 언어가 상처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의 삶과 그 배경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고, 감정 또한 이전보다 한층 차분해졌다. 세상이 고통의 바다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일상을 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6
대학교 시절에는 섭식과 관련된 어려움을 겪었다. 신체적 변화와 함께 심리적인 부담도 커졌다. 이를 조절하고자 여러 시도를 했으나,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최근에는 트라우마와 신체 기억에 관한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경험이 사고의 패턴이나 신체의 긴장으로 축적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러한 설명은 내 개인적인 체감과도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
나는 이제 스물여섯 살이다. 사반세기를 지나왔지만, 여전히 삶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워가는 중이다. 과거의 모든 사건들을 보다 균형 잡힌 빛 속에서 바라보고 있다.
나는 나의 과거로부터, 나를 두렵게 하는 장소들로부터 도망치려 한 적이 있다. 내가 느낀 추함을 치유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육체적 운동으로 스스로를 탈진할 때까지 몰아붙이기도 했다.
나는 깨닫고 있다, 혹은 이제 막 깨닫기 시작했고, 그 깨달음을 삶 속에서 실천하려 애쓰고 있다.
나는 추하지도, 무가치하지도 않다는 것을.
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말로, 특히 글로 소통하는 데 능하다. 사랑과 함께하는 이들이 있을 때, 나는 훌륭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나는 기회를 포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총명하다.
나는 사람들의 감정을 직관적으로 느낀다.
나는 추진력이 있다.
나는 끈질기다.
나는 능력이 있다.
나는 아름답다.
나는 스스로에게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존재다.
나는 오늘이라는 날에 감사한다.
나는 다른 이들이 존재의 이유를 찾도록 도울 것이다.
이 행성 위에서의 그들의 목적을.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순수하며 자유롭고,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서 당당하게 있음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디에도 기대서는 안 된다.
오로지 자신의 등뼈에 의지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 진리에 의지해야 한다.
자신의 등뼈 외에는 어느 것에도 기대지 않는
중심 잡힌 마음이야말로
본래의 자기이다.”
출처 : ‘자신의 등뼈 외에는’, 『홀로사는 즐거움』 법정 스님 지음7
- 赤ちゃん ↩︎
- 외할아버지; iykyk. ↩︎
- 그리고 그 책들이 내 삶을 구했다. ↩︎
- 공익을 위한 진실하고 수준 높은 저널리즘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 영향력이 얼마나 커질지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습니다—즉, 현장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우리가 실제로 귀 기울여 들을 것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저에게도 저널리즘과 관련된, 다소 슬프지만 진심 어린 사랑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 소설을 쓰는 대신 선택했던, 보람 있는 대안이라고들 하는 그 일에 대한 이야기인데, 저는 그것을 다음의 한 문장으로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Ich wartete auf den Zusammenbruch, damit ich endlich frei sein konnte.” 나는 마침내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바라며, 붕괴를 기다리고 있었다. ↩︎ - “한국”은 “캐나다”입니다. 일기에서 이런 오류를 자주 범했고, 지금도 대화 속에서 두 나라를 서로 혼용해서 사용합니다. ↩︎
-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
- 2013년 한국으로 처음 이주한 이후로 교조적이지 않은 선불교 수행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