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Why I Read
“우리는 문학을 통해 시간, 공간, 문화의 경계를 넘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려 한다.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드러낼 때, 그것은 곧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이 문장들을 적었던 건, 3년 전 2월의 끔찍하게 추운 어느 날이었다.
서른네 살이었던 나는 완전히 길을 잃은 상태였다.1
그 순전한 공포와 혼란의 감정이야말로 언제나 나를 책으로 밀어 넣던 힘이었다. 세상의 기괴한 광경으로부터 잠시라도 몸을 숨길 수 있는 피난처를 찾아서.
나이가 들수록 듣지 않았더라면, 보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않았더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내 단편 중 하나에서, 화자는 인생이 여러 면에서 잔혹한 복권과도 같다고 말한다.2 사실이다. 여러 복잡한 축복들 가운데, 나는 유난히 ‘능력 있어 보이는 얼굴’을 타고났다. 그 얼굴이 불러일으키는 기대에 병적으로 부응하려는 성향까지 함께.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세상 돌아가는 꼴을 다 알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얼굴이다.3
나 같은 사람—평범하지만 깊은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은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결국 소모되고 버려진다는 걸 깨닫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국 여성 작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이 점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사실, 책 읽기는 내 삶을 구한 일이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 자기 안과 세상 속의 모든 추함을 목격한 후에도 — 거대한 미지의 세계로 한 걸음 내딛어 창조라는 행위를 감행한 결과물. 그들은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하는, 거의 무모한 희망을 품고 글을 썼다. 어떤 작품은 그들의 생전에 울림을 얻었고, 어떤 작품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닿았다.4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나는 순전히 이기적인 이유로 책을 읽는다. 내가 의식이라는 것을 얻은 순간부터 평생 붙잡고 있던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나는누구이며, 왜여기있는가?
아직 답을 찾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사실이 예전만큼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다.
내가 더 이상 이 질문들에 대한 탐구를 방해하는 사람이나 기제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히 버틸 수 있다.
To be continued.

추신 1
어젯밤, 클린트 벤틀리 감독의 Train Dreams를 보다가 오랫동안 울지 않았던 만큼 울어버렸다. 거대한 경제적·기술적·사회적·문화적 변화의 배경 속에서, 한 남자의 영적 여정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방식이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떠올리게 했다.
추신 2
나는 2023년부터 미나를 간헐적으로 팔로우해 왔다. 그녀의 책 추천이 유난히 공감이 잘 되어서이다. (작년에 「포 서우전드 위크스」를 읽었는데, 캘 뉴포트의 훌륭한 팟캐스트 Deep Questions 덕분에 알게 된 책이다.) 그녀의 모든 콘텐츠를 논할 정도의 능력은 없다 (대략 4,000주의 삶만 허락된 평범한 인간이니까요 🥹). 하지만 이번 영상은 정말 핵심을 정확히 찔렀다. 🔨 세상이 얼마나 🤡로 가득 차 있는지를 잘 해부해 줄, 이런 당돌한 안내자가 Gen Z에게는 더 많이 필요하다.
추신 3
- “[Book Review] In ‘Future of Silence,’ Korean women’s voices resound across generations.” The Korea Herald, 2022년 2월 24일 발행 ↩︎
- 「뚱못이상, 열다섯-1」 ↩︎
- 하지만 나도 모른다. 앞선 단락을 참조. ↩︎
- 창작 활동에 실제 시간과 노력, 가치를 부여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그 시대의 경제·사회적 현실과 무관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또 하나의 거대한 정신적 도약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왜 나는 쓰는가’를 쓰게 될 때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