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마지의 사무실」은 마지 험치트(Marge Humchitt)라는 전직 성노동자이자 활동가에 관한, 이전에 미발표된 글이다. 마지는 밴쿠버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Downtown Eastside, 이하 DTES)를 기반으로 활동했다. 나는 2010년 가을, UBC 대학원 저널리즘스쿨 1학년생 시절 DTES를 취재 구역으로 맡고 있던 때, 반(反)경찰 시위 현장에서 마지를 처음 만났다.
마지는 이후 2018년, 캐나다 실종·살해된 원주민 여성·소녀 전국조사(National Inquiry into Missing and Murdered Indigenous Women and Girls) 공개 청문회에서 자신의 DTES 생활과 세상을 떠난 언니 셰릴(Cheryl)에 대해 증언했다. 전체 증언 내용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2010년 12월 이 글을 완성했을 당시, 내가 발표를 하지 않은 이유는 많았다.
윤리적 재현의 문제, 세상을 모르는 풋내기였던 나의 경험 부족, 그리고 내가 담아내고자 했던 것과 실제 결과물 사이의 끊임없는 간극 등이 있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 모든 문제와 여전히 씨름하고 있다. 달라진 점은 이제 이런 고민들을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할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혼돈스러운 이 우주 속의 바위덩이 위에서 함께 공존하려 애쓰는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의 시간과 진심, 그리고 정직함에 감사를 전한다. 아래 글은 그녀의 전적인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마지는 밴쿠버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의 한 공원 화장실에서 출근 준비를 하는 한 소녀를 바라본다. 소녀는 드럭스토어에서 산 마스카라를 바르고, 찢어진 스타킹을 끌어올린다. 오후 세 시다.
“나도 예전에 저랬어.”
마지가 나중에 말한다. “공원 화장실에서 출근 준비하던 시절.”
마지는 본능적으로 작은 배낭을 열어, 칠면조와 으깬 감자가 담긴 플라스틱 포장 용기를 꺼낸다. 조금 전 무료 추수감사절 점심 행사에서 받은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소녀에게 건넨다.
“고마워요.” 소녀가 용기를 꼭 쥔다. DTES의 다른 ‘워킹 걸’들과 마찬가지로, 나이는 15세인지 30세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소녀는 이스트 헤이스팅스 스트리트 쪽으로 걸어간다. 마지는 어깨를 으쓱한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이 소녀에 대해 더 알아볼 생각이다.
“난 여기에선 팀에 속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해. 그래도 혼자 걷는 건 괜찮아.”
마지 험치트는 DTES 거리에서 22년간 살다시피 했다. 그녀 스스로 말하길,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엄청난 약물 중독자(big time, heavy drug user)”였다. 2005년, 그녀는 습관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이제 그녀는 거리를 ‘다운타운 사무실’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고객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이라 말한다. 주로 일주일에 한 번 동네를 돌며 그들을 찾는다. 그녀는 휴대전화와, DTES 사회복지 단체 명함이 가득 든 가죽 지갑 하나만 들고 혼자 일한다.
“난 여기에선 팀에 속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해.” 그녀가 말한다. “그래도 혼자 걷는 건 괜찮아.”

마지는 여전히 중독과 싸우고 있다.
“가끔은 해.” 그녀가 말한다. 구체적인 약물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그녀는 DTES에서 ‘클린(clean)’하다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시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곳의 많은 지원 활동가들도 어둠 속에서 자신의 중독과 조용히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팀에 속해 외로운싸움을 숨기기보다, 혼자 걸으며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쪽을 택한다.
“내가 술을 마신다면, 그냥 마시는 거야. 내가 약을 쓴다면, 그냥 쓰는 거지. 하지만 그걸 여기로 가져오진 않아. 절대.”
19살의 마지는 검은 머리에 모래시계 같은 몸매를 가졌다. 아시아인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데이트 제안이 많았다.
최근 한 친구가 그녀에게 새 신발을 사줬다. 아울렛 창고에서 산 튼튼한 작업화였다. 그 친구는 또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을 함께 갈지도 모른다. 마지는 크루즈를 타본 적은 없지만, 인생에서 다른 일은 많이 해봤다. 어떤 시절은 힘들었고, 또 어떤 시절은 즐거웠다.
그녀는 자신이 마르고, 매일 밤 데이트를 하던 시절을 기억한다. 클락 스트리트와 이스트 헤이스팅스 스트리트의 버스정류장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으면 차를 몰던 남자들이 속도를 줄였다.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은 채,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물었다.
“오늘 밤 기분은 어때요?”
마지는 지금도 남자에게 관심이 없고,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돈을 벌어 즐기기엔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그녀에게 ‘즐거움’이란 클럽, 마약, 술이었다. 그녀는 밴쿠버에서 1,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작은 섬 마을 벨라벨라 출신이었다. 19살 때, 언니 셰릴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19살의 마지는 검은 머리에 모래시계 같은 몸매를 가졌다. 아시아인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데이트 제안이 많았다. 늘 하이힐과 화장을 했다. 46세인 지금은 짧은 회색 머리에 둥근 체형이다. 키는 152센티미터, 화장은 하지 않는다.
“그때 날 지금 보면 못 알아볼 걸?” 그녀가 웃는다. 늦은 오후 햇살 속에서 짙은 회색 눈이 반짝인다. 뺨의 붉은 여드름 자국이 부드럽게 빛을 머금는다.
마지는 ‘사무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더 꺼낸다. 그레이스라는 젊은 여자가 있었다. 나쁜 약 기운에서 내려오는 중이었다.
“처음 봤을 땐 골목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어. 그냥 말랐어, 뼈만 남은 정도였지.”
마지는 그레이스를 재활 시설로 보냈지만, 곧 재발했다. 몇 달 뒤 다시 만난 마지는 그녀를 꼭 안아줬다.
그곳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녀가 E라는 여자와 보낸 지난 10년의 거리 생활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건 ‘나 아직 여기 있어. 널 위해.’라는 뜻이야. 그게 내가 해준 거야.”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떨린다. 눈물을 훔친다. “누가 다시 미끄러졌다고 해서 비난하진 않아. 그건 그 사람을 더 아프게 하는 거니까. 차라리 내 배를 갈라서 날 아프게 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한 번은 데브라는 여성이 집주인으로부터 받은 퇴거 통지서를 맞서 싸우도록 도왔다. 비록 승소하진 못했지만, 친구로 연락을 이어갔다. 마지는 그녀를 “진짜배기(the Real Deal)”라고 부른다. 둘은 DTES 여성 주거 집회를 통해 만났다. 마지는 이런 집회뿐만 아니라 여성, 건강, 사회정의를 주제로 한 토론회와 회의에도 자주 참석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녀가 E라는 여자와 보낸 지난 10년의 거리 생활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공원 근처를 지나다가, 마지는 자신과 E가 함께 살던 건물을 가리킨다. 1990년대 중반, 마지의 삶이 무너져가던 시기에 그곳으로 함께 이사했다. 언니 셰릴은 마약빚 때문에 살해당했고, 13년 사귄 여자친구도 떠났다. 하지만 마지는 너무 늦게야 E가 통제적이면서도 제어할 수 없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둘은 크랙을 피우고 술을 마셨다. 돈을 벌어 다시 크랙과 술을 사기 위해서만 멈췄다.
“E는 낮에 손님을 받고, 나는 밤에 받았어. 그러다 보면 새벽 3시, 4시, 5시까지 이어졌지.” 마지가 말했다. “그건 거의—아니, 거의가 아니라—전형적인 폭력적인 관계였어.”
2005년, 마지는 생애 가장 긴 근무 시간을 보냈다. 오전 7시, 추위에 떨며 길모퉁이에 서 있었다. 빈 거리에 교통신호등만 색을 바꿨다. 지쳐 있었지만 집에 갈 수 없었다.
“E는 사람을 똑바로 보지 말고, 20초 이상 말하지 말라고 가르쳤어. 그걸 회복하는 데 정말 오래 걸렸어.”
주머니엔 코카인이 없었고, E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까 두려웠다.
젠장, 이렇게는 못 살겠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지는 완전히 떠났다. 여성 전용 재활 프로그램에 들어가, 형제자매와 조금씩 연락을 회복했다. 원래 독립심이 강했지만, E와 함께한 시간은 깊은 심리적 상처를 남겼다. 버스에서 공황발작을 겪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게 됐다.
“E는 사람을 똑바로 보지 말고, 20초 이상 말하지 말라고 가르쳤어. 그걸 회복하는 데 정말 오래 걸렸어.”

회복 과정에서 마지를 도운 사람은 많았다. 가족 안팎 모두 있었다. 2005년은 기복이 심한 해였기에, 세부 사항은 일부 흐릿하다. 그녀는 몇 번이고 재발했다. 형제자매들은 그녀를 집과 삶 속으로 초대했다. 출산 직후 입양 보냈던 딸과 재회했다. 자신이 할머니가 됐다는 것도 알았다.
2007년, 마지는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뉴웨스트민스터에서 열린 로버트 윌리엄 픽튼 다중 살인 재판에 참석했다. 피해자 6명 모두 DTES에서 온 여성들이었다. 그녀는 그들을 알지 못했지만, 이야기와 삶을 알고 공감했다. 내가 그들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으니, 가야만 했다.
<글로브 앤드 메일> 기자가 매일 픽튼 바로 뒤에 앉아 있는 그녀를 보고 ‘날마다, 전직 성노동자는 재판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마지는 기자에게 다시 연락하고 싶어 한다. “지난 3년간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 그가 쓰게 하고 싶어.” 그 기사에는 그녀의 손녀 두 명도 언급됐는데, 그건 나중에 후회했다.
회복 과정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잊을 수 없다.
“내 딸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사생활이 많은 사람이거든.” 딸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 대신 손녀 이야기를 즐겁게 꺼낸다. 이름은 밝히지 않지만,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기꺼이 보여준다. 사진을 보며 깔깔 웃고, 잠시 황홀경에 잠긴다.
벨라벨라에서 온 오빠 랜디가 지금 도시를 방문 중이라, 그녀는 시간을 많이 내서 그를 안내하고 있다. 집회와 회의에 참석하고, 친구와 소녀들의 안부를 확인한다. 손녀들을 사랑하지만, 그들만을 위해 살 수는 없다. 회복 과정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잊을 수 없다. 친구들과, 그녀가 DTES에서 도왔던 여성들도 잊을 수 없다.
“이게 내 사무실이야. 바로 여기.” 마지가 말한다. “46살인 지금, 인생에서 내 흔적을 남기려 하고 있고, 그건 바로 이거야.”

추신 1
다음은 폭력, 착취, 또는 중독에 직면한 여성들에게 안전한 주거, 회복, 옹호를 제공하는 로컬 비영리 단체들 입니다. 이들은 항상 자원봉사자와/또는 기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추신 2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Through a Blue Lens를 보여주던 날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Evelyn Lau의 Runaway: Diary of a Street Kid와 함께, 이 작품들은 밴쿠버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를 바라보는 내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곳에서는 한 블록, 한 블록마다 실제 삶과 실제 슬픔, 그리고 실제 역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복잡하고, 불완전하며, 매우 인간적이다. 이 작품이 내게 열어준 것은 단순한 ‘인지’가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를 편리한 서사적 상징으로 축소하지 않고 온전히 목격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평생에 걸친 성찰이었다.
